2015년 3월 20일 금요일

[국제칼럼]퇴임하는 ‘가난한 대통령’/경향신문 임수진 | 대구가톨릭대 교수·중남미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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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궁을 노숙인들에게 내주고 부인 명의의 농장에서 생활하며, 본인 재산이라고는 낡은 자동차 한 대뿐이면서도 월급의 90%를 기부하는 사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지만 큰 대통령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이다. 이념적으로 의견을 달리하는 우루과이 국민들도 대통령의 소탈한 행보와 국민을 위한 리더십에 지지를 보내고 있고, 퇴임 한 달 전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10%나 오르며 70%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작년 말 대선에서 같은 당 소속의 타바레 바스케스의 승리로 이어지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다시는 그와 같은 지도자를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워하기도 하지만 우루과이에서 무히카와 같은 정치 지도자가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루과이는 비록 독재(1973~1985)의 시기는 있었지만, 정치제도화의 수준이 높고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국가이다. 올해 창당 179년을 맞는 우루과이의 두 정당 콜로라도와 블랑코는 세계에서 정당 경쟁의 역사가 가장 깊다. 
또한 우루과이는 스위스식 직접민주주의를 실행하는 국가로 국민들의 정치 참여가 활발하다. 국민들은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 거부권과 개헌을 위한 국민발의제 권한을 갖고, 의회에서 발의된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시행하고 있다. 대통령, 의회, 지방정부 선거에서는 경선 시행이 의무적인데, 경선부터 독립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가 관리하기 때문에 경선 과정부터 혼탁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정치적 안정과 국민 참여를 유도하는 정치제도뿐만 아니라 우루과이에는 무히카와 같은 가난한 정치인들이 많다. 대통령처럼 기부에 참여하는 정치인들이 많다는 뜻인데, 영부인이자 상원 의원인 루시아 토폴란스키 여사를 비롯하여 집권당인 중도좌파연합 소속의 확대전선 의원들은 모두 월급의 50%를 기부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확대전선이 도시 게릴라운동을 하던 1971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부를 통해 모든 국민들이 기부 활동에 동참함으로써 소외된 사람들이 없는,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였고, 이러한 전통은 그들이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력을 획득한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그들은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솔선수범하여 기부하고 기득권을 내려놓음으로써, 국민들 사이의 기부문화를 확산하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정치의 목적에 충실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무히카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당신이 돈을 주고 무엇을 산다고 했을 때 당신은 그것을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벌려고 소비한 당신의 인생으로 사는 것입니다. 대통령 혼자 검소한 생활을 해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다 돕지 못하므로 우루과이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소비하고, 그 돈으로 행복해지려고 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리는 무히카 대통령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은 행복이라는 그의 삶의 철학은 그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국민들을 위해 함께 나누는 것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처럼 그는 대통령으로서 국민에 의해 선출되었음을 잘 아는 사람이다.

3월1일 무히카는 임기를 마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갔다. 법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무히카와 집권당 의원들은 40년이 넘도록 기부를 실천함으로써 국민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 무히카는 이제 떠났지만, 소신있게 솔선수범하는 우루과이 정치인들의 국민들을 위한 진정성 있는 리더십은 ‘무히카 현상’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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