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0일 월요일

소크라테스는 왜 평생 단 한권의 책도 쓰지 않았을까 책과 출판의 문화사/전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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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Socrates, BC 469?~BC 399)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철학자를 나타내는 하나의 아이콘(icon)이다. 철학의 '철'자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소크라테스에 대해선 아는 체를 한다. 소크라테스는 오늘날에만 유명했던 것이 아니라 생존해 있던 당시에도 이미 '아테네의 명물'이었다. 다만, 그 시절의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후대에 길이 이름을 남기는 철학자가 될 것이란 사실은 미처 알지 못했다. 당시 사람들에겐 별 볼 일 없는 석수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맨발에 허름한 옷차림으로 하루 종일 시장(agora)을 돌아다니며 아무하고나 기꺼이 토론하는 사람이자 귀족 자제들을 가르친답시고 대답하기 어려운 이야기나 물어보는 괴팍한 소피스트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이 훗날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현혹시켰다는 죄목으로 독배(毒杯)를 마셔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위대한 철학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소크라테스는 살아생전 단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소크라테스를 만날 수 있는 것은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과 크세노폰, 친구 아리스토파네스 등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왜 그랬을까? 소크라테스의 시대만 해도 텍스트(text)는 보편적인 도구가 아니었다. 기원전 5세기경 아테네에는 이미 상당수의 책이 존재했고 서적 교역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독서 관행은 적어도 한 세기 뒤 귀중한 필사본들을 수집했던 최초의 독서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충분히 확립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소크라테스보다 훨씬 이전 사람이었던 호메로스(Homeros, BC 800 ?~BC 750)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구전으로 전승되다가 문자로 정착된 것이었지만, 그와 동시대 사람이었던 헤로도토스(Herodotos, BC 484?~BC 425?), 투키디데스(Thukydides, BC 460?~BC 400?)는 책을 썼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와 파이드로스의 대화를 담은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 중 <파이드로스(Phaidros)>에 그 힌트가 있다. 

'주사위, 숫자, 문자, 기하학, 천문학' 등을 발명한 신 '토트(Thoth)'가 이집트의 파라오를 방문하여 자신이 발명한 것들의 장점을 열거한다. 토트가 "문자는 사람들의 기억을 향상시켜 줄 배움의 한 종류로 내 발명은 기억과 지혜 모두에게 유익한 비결"이라고 주장하자, 파라오는 "사람들이 그걸 배운다면 그들의 영혼에 망각할 수 없는 무언가를 심는 결과가 되어 사람들은 앞으로는 쓰여진 것에만 의존하려 들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기억 속에 무언가를 담아 찾아내려 하지 않고, 눈에 드러난 기호에만 의존할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지혜가 아니라 지혜의 유사품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아는 것도 아니면서 말만으로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 것이기 때문에 결국엔 짐만 될 것"이라며 반론을 제기한다. 이 일화는 소크라테스가 '텍스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에게 문자로 기록된 '책'이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듯 '마음의 지혜[眞本]'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지혜를 모사해 그린 그림(模寫)'에 불과한 것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시대에 책이란 기억과 지식의 보조 역할을 했지만, 진정한 철학자라면 책 없이도 해낼 수 있어야 했다. 책에 대한 진정한 권위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성경> 출현 이후의 일이었다.

/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성공회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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