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6일 목요일

시골 도서관의 작은 실험/중앙일보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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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본 여행 중 규슈(九州) 사가(佐賀)현에 있는 다케오(武雄)라는 동네에 들렀다. 온천과 3000년 수령의 삼나무가 있는 인구 5만의 작은 도시. 그런데 역을 나서 시내 한복판을 돌아다녀도 지도를 든 관광객 몇몇을 제외하곤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길을 묻고 싶어도 물을 행인이 없는 상황. 아,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어디 가 있는 거야.

 곧 답을 알게 된다. 잔잔한 시골 풍경에 급격히 질리는 도시녀 본색이 발동, “이런 동네에 스타벅스는 없겠지?”라고 중얼대던 참이다. 나 찾았느냐는 듯 저 멀리 스타벅스 간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걷다 보니 나지막한 2층 건물 주변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봄빛이 완연한 테라스에서 책을 읽고 있는 할아버지·할머니, 잔디를 뛰노는 아이들과 엄마, 홀로 커피를 마시며 독서 삼매경에 빠진 젊은이들…, 다케오 시립도서관이었다.

 1층 전체를 높다란 천장에 고급스러운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으로 꾸며진 세련된 서점이 차지하고 있다. 일본 최대 음반 렌털업체인 쓰타야(TSUTAYA)가 운영하는 책방 겸 CD&DVD 대여점이다. 한편에 스타벅스가 있고, 그 옆엔 커피를 마시며 자유롭게 책을 볼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도서관은 어딘가요?”라고 직원에게 물으니 여기가 도서관이란다. 1층 벽면과 2층 서가에는 서적분류표를 붙인 시립도서관 장서 20만 권이 빽빽이 꽂혀 있다. 이 책들도 누구나 꺼내 읽을 수 있고, 서점 계산대에서 도서관 책의 대여와 반납도 함께 할 수 있다. 도서관이자 서점이고, 열람실이면서 카페인 셈이다. 

 알고 보니 이곳은 일본의 명소였다. 이전에는 시에서 운영했지만, 2013년 4월부터 민간업체 쓰타야가 위탁 운영을 맡고 있다. 오후 5시면 문을 닫던 도서관은 퇴근길 직장인들도 들를 수 있도록 오후 9시까지 문을 연다. 연간무휴라 휴일에도 시민들이 몰린다. ‘한번 가봐야 할 도서관’으로 소문이 나면서 지난해 이용자가 100여만 명에 달했다. 이 중 40만 명은 다케오시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 도서관 하나가 지역 경제를 살리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공공기관을 상업화한다는 아이디어에 반대의 목소리도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직접 가본 이라면, 절로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이곳의 따뜻하고 독특한 분위기에 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틀을 깨는 과감한 시도로 지역 주민들의 편한 쉼터이자 모임 장소, 공부방이 된 도서관. 기차 시간도 늦추며 저녁까지 머물다 몇 권의 책을 사 들고 돌아왔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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