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0일 월요일

'책과 출판의 문화사' - 연재를 시작하며 한국·세계사 책 역사 문화적 통찰 동·서양 교류 통한 시대변화 고찰/전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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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를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책은 이 두 가지 혁명을 동시에 수행한다. 

시대를 움직이는 책은 한 시대를 만들고, 그 시대의 변화를 추동하지만 사회적·문화적 조건들에 의해 규정받는다.  
책의 문화(출판문화)는 그 시대의 사회적 조건의 산물이라는 측면에서 '구조적'이지만, 한 시대의 조건을 극복하고 '조직하는' 현상이란 점에서 시대를 만든다. 

문자의 탄생 이래 책은 개인의 지성과 감성을 키우는 가장 유용한 도구였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을 한 사람의 시민으로 키워내는 것이 교양이다. 
교양이란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것도, 소장하는 것도 아닌 키우고 품어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시대의 교양이란 타인과 어울려 사적인 관계를 구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공동체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내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나치 독일은 자국 내에서 유대인과 체제 저항적인 지식인들의 책을 압수하여 불태웠다.  
또한 군국주의 일본도 '출판법'과 '일반검열표준' 등의 기준으로 출판을 탄압하고 금서(禁書)를 양산했다.  
그에 비해 미국은 학계의 지식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자국민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들을 '그레이트 북스(Great Books)'란 이름으로 선정했고, 이 책들을 미국 내의 여러 대학에 보급하고 비치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책을 불태운 나라인 독일과 사상을 통제한 일본은 결국 패망하고 말았다. 

세종대왕(世宗, 1397~1450)은 한글을 창제할 만큼 뛰어난 성군이었고 학문에도 두루 능했으나 서양의 샤를마뉴 대제(Charlemagne, 742~814)는 간신히 편지나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는 죽기 전 날 밤까지 침대 옆에서 작은 왁스판을 놓고 쓰기 연습을 했지만, 죽을 때까지도 쓰기를 배우지 못했다.  
실제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올 때까지 서양의 왕들 중엔 쓰기는커녕 글을 읽지도 못하는 왕들이 수두룩했다.  
서양에서 왕족이 글을 읽고, 쓸 뿐만 아니라 심지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이후의 일이었다.  

동양은 그와 정반대로 거의 모든 왕들이 읽고 쓰기에 익숙했으며 심지어 학자들과 토론까지 하고, 책을 쓰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런데 어째서 동양은 서양에 뒤처지게 되었을까?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한 이 땅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목판인쇄술을 배태한 인천이 그로부터 780여년이 흐른 오늘 '세계 책의 수도'로 선정되었다. 

본 기획 연재는 우리 역사와 세계사 속에서 탄생한 책의 역사를 문화적 관점에서 고찰해보고, 동양과 서양의 문화, 문물교류의 역사를 통해 '한 권의 책'이 시대를 변화시키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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