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0일 월요일

세계책의수도 인천] 780년 전 강화에서 찍어낸 인쇄 역사 '위대한 첫걸음' 인천 활자의 시대를 열다 - 1. 인천 강화, 고려 금속활자를 발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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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인천 강화도에서 제작한 <상정고금예문>(1234)과 <남명천화상송증도가>(1239)를 비롯해 현존하는 최고의 금속활자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한 나라이다. 이는 독일 구텐베르크의 <42행성서>(1453~1455)보다 221년 앞서는 것이다. 사진은 청주 고인쇄박물관이 금속활자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인형으로 재현한 모습.
강도 천도 이전 주조기술 보유 정설로 
제작 비용·시간 단축 … 목판 단점 극복 
1234년 금속활자로 상정고금예문 편찬 
구텐베르크 '42행성서'보다 221년 앞서 


'금속활자의 발명'은 인류의 지난 1000년 동안 일어난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건으로 꼽힌다.
인쇄술이 보편화되면서 인류의 문명은 급속하게 진전한다. 
금속활자의 발명이 인터넷과 SNS가 주도하는 21세기 '디지털뉴미디어혁명'에 비견되는 이유다. 
인쇄술을 발명하기 전까지, 책은 손으로 일일이 쓰는 '필사'의 기법으로 만들어야 했다. 
사람이 직접 쓰는 일이다보니 글자가 틀리거나 빠지기 일쑤였다. 내용이 잘못 기록되는 경우도 있었다.  

대안이 절실했다. 
쇠로 글자를 만들기에 앞서 먼저 나온 것은 '목판인쇄술'이다. 
나무에 글자를 새기는 것은 그러나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글자가 고정돼 있어 한 종류의 책만 제작할 수 있는 것이 단점이었으며, 부식이나 뒤틀림 등으로 보관 역시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만들어낸 글자가 금속활자인 것이다.  
금속활자는 활판인쇄에 사용하기 위해 금속으로 한 자씩 조각하거나 밀납에 녹여 부어 만든 '독립적 글자'다.  

쇠붙이를 녹여 주형에 붓는 방법으로 여러 크기의 활자를 자유롭게 주조했다. 
금속의 성질에 따라 석활자, 연활자, 동활자, 철활자로 구분하지만 금속성이 있는 재료로 만든 활자는 모두 금속활자로 부른다.  
한 벌의 활자를 만들면 오래 보관하면서 필요한 책을 수시로 찍어내는 게 가능했다. 
목판인쇄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고 일하는 시간이 단축된 것은 물론이다. 
이 같은 금속활자의 발명이 최초로 이뤄진 곳이 바로 우리나라, 그것도 '인천 강화도'이다. 


13세기인 1232년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개경을 떠나 강도(江都·강화도)로 수도를 옮긴 고려는 1234년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을 펴 낸다.  
고려왕조를 따라 강도로 함께 온 이규보는 저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 '금속활자로 상정예문 28부를 찍어 해당 관청에 나눠주고 보관하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상정고금예문>은 역대 조정의 헌장(憲章)을 모으고, 우리의 고금예의와 당나라의 예의를 참작, 왕실의 의례에서부터 백관의 장복(章服)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239년 무신정권의 수장 최이(최우)는 다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펴 낸다.  최이는 발문에서 '증도가는 참선하는데 매우 요긴한 책이지만 전래되지 않아 기존에 금속활자로 간행했던 이 책을 1239년 번각(목판으로 다시 새김)했다'고 밝히고 있다. 

2개의 책 모두 강화도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금속활자의 역사는 1377년 <직지> 혹은 <직지심경>, <직지심체요절> 등으로 불리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로 이어진다. <직지>는 1374년 백운화상이 엮은 책을 1377년 청주 흥덕사가 금속활자로 간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고려의 금속활자는 언제 처음 만들어졌을까. 
고려는 섬세한 금속공예술을 가진 국가였다.  
뛰어난 연금술을 바탕으로 고려는 강화도로 천도한 1232년(고종 19) 이전에 금속활자를 만들었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금속활자의 주조와 인쇄시점에 대해선 고려 문종조 기원설(1047~1083), 숙종조 기원설(1102), 12세기 중엽 기원설(1120년대) 등이 있으나 '1232년 이전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고려의 금속활자는 '복'자와 '전'자로 2개 모두 개성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와 함께 4년 전 '증도가자'(證道歌字) 12개가 공개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를 포함해 101개의 증도가자가 현재 '국가보물' 신청을 한 상태다.
인천 강화도에서 서양 구텐베르크의 <42행성서>보다 200여년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가 탄생했고 그로부터 780여년이 지난 2015년, 인천에서 '세계책의수도' 원년이 시작됐다.
/글·사진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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