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0일 월요일

세계책의수도 인천] 세계 最古 목판인쇄물…신라 혼 깃든 '천년의 보물' 인천, 활자의 시대를 열다 - 8.목판인쇄의 시작, 무구정광대다라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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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세계 목판인쇄술의 역사를 열어젖힌 현존 최고 목판인쇄물이다. 다라니경은 '초조대장경'과 강화도 대장도감에서 판각한 '팔만대장경' 간행으로 이어지며 세계목판 인쇄술의 발전을 견인한다. 사진은 실물을 복제해 불교중앙박물관이 전시해 놓은 다라니경의 모습.
▲ 실제 다라니경. /사진제공=불교중앙박물관
▲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소장한 서울 '불교중앙박물관' 전경.
신라 751년 무렵 간행…우리나라 최초의 '목판권자본'
정교한 판각술 고풍스런 서체 1200여년 지나도 가치 여전
다라니경 인쇄술 유구한 역사…강화 '팔만대장경' 판각 이어져

1966년 10월15일 경주시 불국사 경내. '석가탑'의 3층 탑신과 옥개석을 들어올리자 네모난 상자가 드러났다. 가로와 세로가 각가 40여㎝ 정도 되는 상자는 금동제 사리 외함이었다. 사리 외함 주변으로 동경(거울), 향, 먹, 목제소탑과 같은 공양품이 눈에 들어왔다. 사리 외함 위로 비단으로 싸고 실로 감은 물체가 고색창연한 기운을 발산했다. 누렇게 빛이 바래 있었지만 둥글게 말린 부피감은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너비 6.5~6.7cm, 길이 약 620㎝의 인쇄물은 다름아닌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하 다라니경)이었다.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은 그렇게 석가탑 복원을 위한 탑 해체 작업 중 발견됐다.  

신라 35대 경덕왕 원년인 742년 건립돼 일제강점기에도 원형이 보존됐던 석가탑을 당시 해체한 건 도굴꾼들의 손을 타면서 손상됐기 때문이었다. 1200여년이 지났음에도 다라니경은 글씨가 선명하고도 정교했다. 신라의 인쇄술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도굴단에 의해 일부 훼손됐던 석가탑은 그해 12월24일 복원됐고, 다라니경은 이듬해 9월 국보 제126호로 지정된다.

처음 발견 당시 다라니경은 책지 12장을 이어 붙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판본을 펼치자 620㎝ 정도였으나 꾸겨진 부분을 펴고 부스러진 조각을 찾아 복원한 결과 길이가 642㎝로 늘어났다. 위·아래 변의 길이는 5.3~5.5㎝이고, 그 사이 각 항의 글자수는 6~9자이며, 직경 약 4㎝의 붉은 나무기둥에 말아 놓은 두루마리 책이었다.  

다라니경이 최초로 공개될 당시 습기와 벌레로 인해 삭거나 좀이 슨 부분이 많았다. 심한 산화작용으로 부스러지거나 조각이 나 책머리의 경·한역자 이름과 본문 11항은 사라진 상태이기도 했다. 본문의 경우 250㎝까지는 5~6㎝ 간격으로 1~2항 앞 뒤의 글자가 산산 조각나 흩어진 상태였다. 그 이하도 문자의 훼손이 계속되다가 권말에 이르러 완전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다라니경은 발견 뒤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을 위촉받아 특별 관리를 해왔으나 20여년이 지나면서 손을 댈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이에 문화재위원회가 1988년 9월부터 5개월간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벌여 결국 원형의 모습을 갖추게 됐고 조각을 맞추어 잃어버린 본문 11항 중 4~10항의 일부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15년 2월4일. 무구정당대다라니경을 보관하고 있는 서울 종로 조계사 옆 불교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새해를 맞아 마침 '2015 불교중앙박물관 테마전'을 여는 중이었다. 다라니경은 지하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실물을 보고 싶다는 기자의 요청은 거절당했다. 대신 전시실의 복제품을 볼 수 있었는데 김추연 학예사는 "복제품이지만 실물과 다름 없다"고 말해줬다.  

다라니경은 10㎝도 안 되는 폭에 작게 씌여진 글씨. 일부 좀벌레 같은 것에 쓸려서 난 것처럼 보이는 사람 모양의 규칙적인 공백도 눈에 들어왔다. 김 학예사는 "로마교황청에서 온 관계자가 교황청의 문서는 200년 내지 300년이면 산화돼 없어지는데 어떻게 이런 문서들이 그대로 남아있는지 놀랍다고 말했다"고 전해줬다. 그는 "종이와 먹이 좋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잘 보존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다라니경은 신라 751년(경덕왕10) 무렵에 간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목판권자본(木板卷子本·목판본에서 인쇄한 두루마리 책)으로 토하라(중앙아시아) 승려 미타산이 704년에 한역한 경전이다. 조탑공덕과 공양법식에 관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을 담고 있다. 조탑공덕은 탑조성·고탑중수·진흙소탑 안치와 같은 공덕을, 공양법식은 다라니 암송·다라니 필사·제단공양 방법과 같은 다라니 봉안과 관련한 작법의식을 각각 설명하고 있다. 

다라니경이 발견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은 770년쯤 간행된 일본의 '백만탑다라니'(百萬塔陀羅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다라니경이 신라시대의 것임을 증명해주는 중수기까지 발견됨으로써 세계 목판인쇄술의 역사는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백만탑다라니는 특히 전문을 완전하게 새긴 목판인쇄물이 아니고, 다라니경 중 근본(根本)·자심인(自心印)·상륜(相輪)·육도(六度)의 다라니 4종만을 발췌해 장단(長短) 2종으로 나누어 작은 나뭇조각에 도장이나 스탬프를 찍듯이 날인한 낱장의 인쇄물임이 밝혀졌다. 반면 다라니경은 경문 전부를 완전하게 새겨 글자면을 위쪽으로 해 먹칠한 뒤 한지에 정식으로 인쇄해 두루마리 형식으로 장정한 책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판각술이 정교하며 서체가 고풍스럽고 힘이 넘치는 게 특징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목판인쇄술의 성격과 특징을 완벽하게 갖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목판 축장본인 것이다.  

다라니경은 중국 북방에서 발원한 거란족을 물리치기 위해 1011년(고려 현종2년) 판각한 '초조대장경', 몽골군의 침입으로 1232년 불타버리자 1236년 강화도 대장도감의 지휘 아래 전국적으로 판각한 '팔만대장경' 간행으로 이어진다. 

/서울=글·사진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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