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5일 일요일

2009년 10월 30일 오늘 서울양서협동조합을 다시 본다 / 오균현(현 사단법인 디지털소기업연합회장)

들어가는 글

31년 전, 민주주의를 잔혹하게 짓밟던 유신시절인 10월 어느날, 부산에서 양서협동조합이 탄생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산으로 갔다. 김희욱 전무를 통하여 창립배경과 목적, 그리고 운영 등을 배우고 서울로 왔다. 민주화 운동에 여념이 없는 지인들과 수차례 만나 논의를 했다. 논의 중심은 민주화운동의 대중화를 위한 교육활동이 필요성이었다. 실무진이 구성되었고 매주 1회 모임을 가졌다. 협동조합의 역사와 근현대사 등을 공부했다. 조직의 방향도 대중화로 정해졌다.

서울양서협동조합 창립발기위원회가 발족되고, 19781112() 종로 YMCA 강당에서 창립되었다. 조합장에 변호사 조영황, 부조합장에 김쾌상, 전무에 오균현으로 서울양서협동조합이 탄생되었다. 서대문구 신촌기차역 부근 건물 2층에서 시작하여 광화문으로 이전하고, 다시 이대 후문 부근 주택가로 이전했다. 19833월 해체되었다.

서울양서협동조합이 탄생되고 해체될 때까지의 탄생배경과 지향하는 목표와 그 성과물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한편으로 민주화 운동의 대중화가 필요한 시기에 탄생된 서울양서협동조합을 통해 현재의 사회교육의 바람직한 뱡향을 제시해 본다.

1. 창립배경과 민주화운동의 저변확산운동으로의 양서협동조합

양서협동조합의 탄생을 전후한 시기는 박정희정권의 말기로 혹독한 탄압의 연속이었다. 이에 비례하여 민주화운동도 심화되어 갔다. 많은 민주인사가 투옥되고 그 자리를 이은 핵심 인사들은 저변확산운동의 필요성은 인식하면서도 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부산에서 시작된 양서협동조합은 대중의 의식화운동의 확산에 적합한 운동으로 자리 매김 되었다. 이러한 배경은 양서협동조합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서울양서협동조합도 같은 상황이었으나 다른 지역에 비해 더욱 절실한 운동으로 많은 직장인들이 조합원으로 가입 되었다. 그 당시 대학을 졸업하고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직장을 다니는 화이트 칼라였다. 또한 이들은 금서로 지정된 책을 구하지 못했다. 언론의 탄압으로 정확한 정보도 얻지도 못했다. 서울양서협동조합 실무진들은 이들을 조직하고 함께 교육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2. 서울양서협동조합의 목표

서울양서협동조합은 양서는 양심을 낳고 양심은 정의로운 사회를 낳는다를 케치프레지로 내 세웠다. 이 케치프레이가 의미하는 것은 양서는 꼭 읽어야 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민주국가를 만들어 가는 구성원이 되자는 것이다. 서울양서협동조합은 우선 교육을 통해 문제의식을 가지게 하고 민주화 마인드를 확고히 하도록 했다. 원대한 꿈도 제시되었다. 민주화된 사회교육을 위해 대학을 설립해야 한다고 했다. 남을 헤꼬지하고 거짓이 난무하는 사회, 이를 바로잡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목표로 하였다.

서울양서협동조합의 목표에 많은 조합원들이 공감하였다. 공감하지 않는 조합원들은 그들 스스로가 참여하지 않고 도태되었다. 예를 들면, 종로2가에서 광화문까지 양서읽기 켐페인을 벌였다. 화이트칼라 직장인이 어께띠를 두르고 지나가는 시민에게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것은 대단한 결심이 바로 그것이다. 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지켜보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동참한 것은 대단한 성과임을 서로가 확인하였다. 이러한 목표에 저변확대는 조합원 증가로 나타났다.

3. 직장인 조합원대상 의식화교육 프로그램과 시행 결과

의식화 교육프로그램의 내용은 저자와의 대화, 유명인사와의 길거리 홍보, 민주화를 위한 대중집회 참석 등이다. 이오덕선생, 김정한선생, 김찬국선생, 한완상선생, 김동길선생 등 유명인사의 책을 중심으로 한 저자와의 대화로 조합원의 문제의식을 가지도록 했다. ‘양서는 양심을 낳고 양심은 정의로운 사회를 낳는다라는 어께띠를 두르고 길거리 홍보로 시민들의 동참을 유도했다. 양서를 매개로한 일종의 낮은 수준의 시위였다. 이는 민주화운동의 저변확대를 염두에 두었던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에 동참한 조합원을 대상으로 심화 교육도 실시했다. 심화교육 조합원들은 교육진행 실무자의 진지한 모습에 가슴을 열고 따뜻한 마음을 공유하였다. 이들은 중요한 실무자로 다른 조합원을 교육했다. 서울양서협동조합은 의식화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낮은 수준의 민주화 활동 참가자에서 확신에 찬 조합원이 증가 되었다.

또한 의식화의 대중화를 위해 라디오 프로그램에 양서읽기 켐페인을 제안하여 오랜기간 지속되었다. MBC 라디오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매주 출연하여 양서를 소개하고 의식화된 글(엽서)를 보내준 청취자에게 그 책은 우편으로 보내 주었다. 그들도 조합원이 되기도 했다. 대부분 고등학생들이었다.

프로그램은 근대사연구모임, 문학연구모임, 여성학모임, 어린이도서 등 여러 분과로 나누고 조합원은 관심이 있는 분과에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자료집 발간하여 대중화 운동을 펼쳐 나갔다. 특히 1979세계아동의해를 맞아 서울양서협동조합에서 어린이전문서점의 개설을 준비했으나 차후로 미루고 어린이책연구소모임을 조직하여 활동을 시작하고 1980년 우리나라 최초로 우리 창작 어린이책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그해 6월 어린이도서연구회가 결성되어 어린이책 읽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현재는 사단법인 조직으로 그 활동이 활발하다. 이들 활동은 서울양서협동조합의 다양한 프로그램의 활동결과로 볼 수 있다.

4. 당국의 지속적인 사찰

종로경찰서 정보과 형사는 하루 종일 감시를 했다. 교육에 참석하는 일반 조합원 따라가서 조사하고 양서협동조합에 참석 못하도록 강요했다. 실무자에게는 욱박지르로 소지품을 조사를 했다. 오균현 전무는 수차례 연금되었고 책을 뺏기기도 했다.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루 종일 조사를 당했다. 안기부(현 국정원) 직원은 수시로 와서 금서를 조사하고 실무자를 조사했다. 길거리 켐페인 때는 일반 조합원을 연행하여 조사를 하고 경찰서로 연행을 당했다. 라디오 방송국에서 실시간으로 뉴스로 내 보내자 마지못해 풀어주었다. 이로 인해 일반 조합원들의 방문이 줄어 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전체 모임에 참석하여 실무자들을 즐겁게 했다. 그러나 실무자들은 수시로 조사당했으나 강도는 약한 수준이었다.

5. 서점 경영의 어려움

서울양서협동조합의 목표가 서점경영으로 돈을 버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유지를 위해 필요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경영부진으로 조합원의 출자금이 잠식되었다. 월 운영회비도 납부되지 않았다. 실무자의 급여도 지급하지 못하게 되었다. 출판사에서 구입한 도서 대금도 지급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는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의 양서협동조합에서 도서구매를 하지 못하여 서울양서협동조합에서 공급하였는데 그 대금을 결제하지 못해 서울양서협동조합에서 출판사에 대신 지급한 것이 운영에 큰 어려움이었다. 그 때의 장부가 민주공원의 전시실에 전시되고 있다. 경영에 관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일이던 계획하면 돈이 있어야 하고 이를 활동의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구성원 모두가 실망하고 축소되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양서협동조합이 돈을 벌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의 저변확대였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문제의식을 일깨워 주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기초가 되자는 것이었다.

6. 재창립
서울양서협동조합이 해체된 뒤에도 1년에 한 두차례 모임을 하면서 그 정신을 공유하다가 서울양서협동조합의 재창립을 준비하였으나 1년 만에 그만 두게 되었다. 용산에 있던 준비사무실을 어린이도서연구회가 사용하게 되었다.

7. 마치는 글

현재 살고 있는 시기에 사회가 가지는 문제점이 있으면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가 자연스레 분출하여 새로운 조직과 시스템이 나타난다. 양서협동조합도 유신말기 독재정권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민주화운동에 꼭 필요한 조직으로 탄생된 것으로 본다.그 지역마다 활동 특성이 다를 수 있다. 서울양서협동조합은 많은 핵심 민주인사가 혹독한 탄압에 맞서 싸울 때, 민주화운동의 저변확산운동으로 교육과 조직을 통해 민주화운동에 작은 밑거름이 되었다고 본다.

이제는 금서도 거의 없다. 수많은 종류의 책이 출간된다. 인터넷을 통해 거의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다. 누구나 자기의견을 발표할 수 있는 민주화가 된 사회이다.그런데 지금은 먹고 사는데 급급한 사회가 되었다. 여러 분야에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고 사회 구성원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 지켜야 할 도덕과 양심을 잊어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올바르게 세울 필요성이 대두된다.이는 올바른 사회교육을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으로 본다. 나아가 선진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금수강산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

출처 https://goo.gl/HTHWs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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