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3일 금요일

땅과 집값의 경제학/ 조시 라이언-콜린스·토비 로이드·로리 맥팔렌 지음, 김아영 옮김

땅과 집값의 경제학
조시 라이언-콜린스·토비 로이드·로리 맥팔렌 지음,
김아영 옮김/사이·1만6000원
“지난 세기에 걸쳐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다른 대출에 비해 주택담보대출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했다.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1928년과 1970년에 은행에서 1순위로 여긴 업무는 사업체에게 무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7년, 거의 모든 나라의 은행들은 주로 부동산 담보대출 업체로 변했다.”(오스카 조르다 외, 2016년)
“미국과 영국 경제에서 (…) 주민들은 엄청난 빚을 안은 채, 투기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개인의 이동성을 저해하는 고정자산에 투기하는 사람들이 되었다.”(마틴 울프, 2008년)
조시 라이언-콜린스 등 사람 중심의 새로운 경제건설을 추구하는 영국 경제학자들이 함께 쓴 <땅과 집값의 경제학>(원제 Rethinking the Economics of Land and Housing, 2017)의 제5장 ‘땅과 집은 어떻게 금융화가 되었는가’ 서두에 올려놓은 이 인용문들은 이 책의 핵심내용과 문제의식을 함축하고 있다. 인용문에서 얘기한 주택, 부동산은 ‘땅’으로 바꿔놓을 수 있으며, ‘거의 모든 선진국’에는 한국도 포함된다. 주민들 대다수가 고정자산(주로 부동산) 투기자가 된 나라는 미국, 영국만이 아니다.
이 책 제1장 ‘땅은 집값 상승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서 저자들이 책을 쓴 이유로 제시한 다음과 같은 의문들에 대한 답도 이들 인용문에 그 핵심내용이 담겨 있다.
선진경제 시스템(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에서 소득증가와 경제성장 속도보다 집값이 더 빠르게 오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집을 더 많이 짓거나 인구가 줄면 해결될 문제인가? 왜 일부 정치인들이나 정책 결정권자들은 집값이 내려가길 원치 않는가? 그리고 왜 집값이 내려갈 수 있도록 조처를 하지 않는가? 땅의 소유권은 왜 그렇게 일부에게 집중돼 있고 부의 불평등은 왜 그렇게 빨리 심화되나? 사회가 집과 땅 소유를 부자가 되는 최고의 방법으로 여기고 갈망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은행이 사업체와 생산적인 투자활동 대신 부동산과 땅을 사려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돈을 빌려주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가계부채가 이토록 높아진 이유는 무엇인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땅의 가치는 생산기술, 부의 분배, 경제적 불평등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땅과 위치(부동산)는 왜 현대경제학에서 중요하게 간주되지도 않고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는가? 그리고 왜 국민계정에 이들이 포함돼 있지 않은가?
아마도 독자들은 대체로 이들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대강 알고 있을 것이다. <땅과 집의 경제학>은 저자들이 살고 있는 영국의 사례를 통해 그 메커니즘을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그것이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주요국들이 선도해온 ‘주거 자본주의’의 도달점이며, 그것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 역사와 주요국 실태 및 정책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시켜 준다.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핵심 문제이자 고민거리이기도 한 이들 문제는 보수정당을 비롯한 일부 기득권층이 왜 극단적 반공주의 선전문구까지 입에 담으면서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정파들을 매도하며 과도한 권력투쟁에 몰입하는지, 그 배경과도 밀접히 연관돼 있다. 결국 그것은 땅(부동산)으로 부를 쌓아올린 이들의 기득권 유지 전략이자 정권교체로 인한 기득권 상실 가능성에 대한 일종의 공포 내지 초조감의 표출일 수 있다.
책은 이야기를 15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공유지의 사유화, 즉 ‘엔클로저’로부터 시작한다. 이 책의 핵심주제인 주거 자본주의의 폐단도 거기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땅의 사유재산화에는 경제적 장단점이 있다. 토지의 사유화는 이윤동기와 경쟁을 자극해 생산력을 해방시켰고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 헨리 조지와 같은 자유주의자들의 사상적 토대가 됐으며, 토머스 제퍼슨을 비롯한 미국을 만든 이들의 건국이념의 밑바탕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사유재산제를 지지했지만 불로소득(지대)의 원천인 땅 소유권에는 반대했고, 피에르 프루동 등 사회주의자들은 땅 등의 사유재산이 만인 공유의 것을 “도둑질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자들이 요지에 땅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남들이 일궈놓은 부(가치)의 상당 부분을 지대 형태로 가져가버리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20세기 초반에 대두한 신고전경제학, 즉 오늘날의 주류 경제학은 산업혁명 이후 농업생산의 원천이던 땅이 산업생산의 근거지로 바뀌고 주요산업이 공업생산과 서비스 쪽으로 이동하면서 생산과정에서 땅의 역할이 모호해진 걸 반영해 그 이론에서 지대와 땅을 소외시켰다. 그 결과 각국 정부들은 땅과 부동산에 부과하는 세금을 폐지하는 대신 징세 대상을 소득과 지출 쪽으로 바꿨다. 유럽 사민주의 모델은 이런 흐름을 더욱 굳혔다. 2차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의 자본주의 번성기가 끝나고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진 뒤 집값은 폭등과 폭락을 오가며 요동쳤다. 1980년대에 등장한 신자유주의체제하에서 주택담보대출이 활성화되면서 개인의 주택소유 관문이 넓어졌고 주거 자본주의의 길이 열렸다. 영국의 경우 정부의 주택공급을 중단하고, 개인이 지대를 지불하거나 시장에서 집을 살 때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바꿨다. 금융규제 완화와 주택(부동산)담보대출 활성화는 주택가격 등귀와 소득 증대 효과를 가져다주면서 한계에 봉착한 영국 자본주의 성장에 숨통을 틔워주는 효과도 냈다. 그러나 규제 완화 확대와 통신기술 발달 등에 따른 금융혁신과 함께 은행들이 생산활동 투자보다는 부동산, 특히 주거용 집(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주택담보대출을 주 수익원으로 잡으면서 지대는 은행과 토지 소유자 등 가진 자들에게 독점적으로 집중됐다.
그리하여 주택시장과 토지경제 전반이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적 불평등,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는 주거 자본주의가 일반화됐다. 공공복지 약화와 주택 가격 상승에 따른 소득 증가를 근간으로 하는 개인복지 강화로의 전환도 이런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이는 공공분야 노조 등의 반대파를 견제, 제거하고 토지 소유자 중심의 유권자들을 지지기반으로 삼으려던 마거릿 대처 보수당 정권 등의 정치적 계산과도 밀접히 얽혀 있다.
이제 은행은 부동산 담보대출 기관이 됐고 집은 노후와 자녀를 위한 자산이자 대출담보 자산, 투기적 금융자산이 됐다. 영국의 경우 땅과 관련된 대출(건설자금 제외)이 1986년에 국내총생산(GDP)의 30%였으나 오늘날엔 70~80%에 달하며, 1990년 이후 은행의 총대출 중에서 부동산 담보대출도 40%에서 60%로 높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 국가 평균 상위 10%의 가구들 자산이 전체 자산의 50%를 차지하고 상위 1%의 자산이 전체의 18%를 차지하며, 상위 10%의 자산이 하위 50% 자산 총량의 5배, 하위 10% 자산 총량의 875배가 되는 이른바 ‘1 대 99의 세계’ 창출에 바로 이런 주거 자본주의 메커니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집세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주택 소유자가 됐고 집세를 받아 이득을 얻는 경험을 직접 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오늘날 지대추구경제의 수혜자들은 땅을 가진 극소수의 귀족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수의 평범한 주택소유자들이다. 이 중에 ‘주택이라는 부’를 이용하여 많은 부동산을 획득하고 소유에서 배제당한 사람들에게 주택을 임대하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야말로 “우리 삶의 불평등, 그 시작은 땅과 집”이었고, 오늘날 주요국들 “불평등의 경계선은 소득이 아니라 부동산 소유 여부”가 됐다.
지금 한국의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 대비 95.6%에 달하고, 전·월세를 노리는 수많은 오피스텔 등 임대용 건축물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우파 정치가나 기관장, 지자체 단체장이 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적 경쟁자들을 노골적으로 ‘종북 빨갱이’로 몰아가며 혐오감과 증오를 부추기는 것도 바뀐 정치상황으로 인한 기득권 상실 가능성에 대한 공포 외에 주택 소유 유권자들을 기성질서 옹호자, 즉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간주하는 관념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장애아 특수학교 건립이냐 한방병원이냐를 둘러싼 주민 분쟁도 사는 집이 금융자산화한 주거 자본주의 사회가 빚어낸 풍경이다.
이런 주거 자본주의는 지속 불가능하다. 상층의 독점을 가능하게 하는 중·하층의 소비능력과 부채가 감내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하면 체제 전체가 붕괴한다. 그럼에도 이런 모순의 원천인 땅·주택(부동산) 투기 위에 구축된 주거 자본주의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은 유권자 다수가 부동산 소유자가 돼 있는 현실에서 그 체제의 유지를 바라고 언젠가의 ‘대박’을 꿈꾸는 강한 풍조가 있고, 정치가 등 유력자들이 그들을 집권과 정권유지 방책으로 삼고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건 정치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부동산이 야기하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은 토지의 공적 소유 강화, 토지가치세 부과 등 조세제도 개혁, 부동산담보 대출기관이 돼버린 은행 역할 변화, 저비용 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을 통해 부동산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부동산을 국민계정에 포함시키고 경제학과 경제정책에 주거 자본주의의 핵인 땅의 역할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저자들은 얘기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출처 http://v.media.daum.net/v/20171102194615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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