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8일 목요일

작지만 의미있는 도시재생 실험들

옛 건물을 부수고 불도저로 밀어 높은 건물을 올리는 도시개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우리가 스쳐 지나갔던 전국 곳곳의 동네 골목길에서 작지만 의미있는 도시재생 실험들이 피어나고 있다. 서울시 도시재생지원센터에 따르면, 서울에서 현재 진행중인 도시재생 현장은 서른 곳에 이르고, 올해 말에는 오십 곳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간의 도시개발은 있는 시설을 모두 철거하고 기반시설을 새로 만들어 수익성 높은 주거·상업단지를 만드는 방식이었다. 반면, 도시재생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 등 도시를 질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목표이다. 옛 골목과 낡은 주택이라도 기능이 남아 있다면 수리를 하거나 리모델링을 해서 유지한다. 지역이 가진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과정에 주민이 참여하고, 이렇게 살아난 도시의 부가가치는 모두가 공유한다. 아래의 예에서 보듯 경제활동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하는 사회적기업가들도 도시재생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중이다.

#실험1. 지역 주민 삶터 다지는 공공 개발자, 어반하이브리드
“우리나라에서 패션산업을 저희만큼 잘 아는 부동산개발업자는 아마 없을 거예요.?” 소셜벤처 어반하이브리드 이상욱 대표는 웃으며 말한다. ‘어반하이브리드’는 도시를 살기 좋게 개발하는 예비사회적기업이다.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에서 봉제업자와 새내기 디자이너를 연결하는 공동작업공간 ‘창신아지트’를, 강남구 역삼동에서 공동주거공간인 ‘쉐어하우스 쉐어원’을 운영중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도시계획을 연구하던 학생들이 의기투합해 창업했다. 이들은 뉴타운 개발 신화가 흔들리던 때 호황을 유지하던 동대문 부동산 시장에 주목했다. 호황의 배경에는 화려한 패션산업이 있었지만, 그 뒤에는 창신동의 소규모 봉제업자들의 저임금 중노동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부동산과 지역 산업의 관계를 목격한 이들은 이익이 소수에 돌아가는 개발이 아니라 지역 산업을 살려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드는 부동산 개발을 목표로 삼았다. 2013년 ‘창신아지트’를 열고 1년여 동안 지역을 연구했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새내기 디자이너와 창신동 봉제업자가 서로 작업을 하면 상생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본과 경험이 부족한 새내기 디자이너에게 임대료도 저렴하고 원자재 시장도 가까운 창신동이라는 입지, 저렴한 비용으로 샘플을 생산하는 방법을 조언하는 창신동 봉제업자들은 ‘가뭄의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 봉제업자들은 새로운 트렌드를 배우고, 새 판로도 개척할 수 있어 대환영이었다. ‘창신아지트’에는 20여팀이 거쳐갔고, 여기서 만나 자신만의 사업장을 여는 사례도 나왔다.

#실험2. 어반플레이, 동네 이야기꾼을 꿈꾼다
어반하이브리드가 공간을 만들고 사람을 연결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식이라면, 콘텐츠를 통해 도시재생을 일구는 소셜벤처도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어반플레이가 그러한 예다. 어반플레이는 소공인들과 지역 활동가들이 갖고 있는 콘텐츠를 발굴해 지자체와 기업이 활용할 수 있게 돕는 일을 한다. 의미있는 지역 콘텐츠라도 행사가 끝나면 대부분 사라진다는 점에 착안해, 지역 콘텐츠를 온라인에 축적하는 ‘아는동네’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서점, 공연장, 공방 등 골목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온라인에 축적하고, 이를 토대로 온·오프라인 잡지로 출간하거나 주민과 외지인이 함께 즐기는 마을 축제로 활용하는 식이다. 마을예술축제 ‘2017 연희 걷다’와 온라인 매거진 <아는동네, 아는연남>, <아는동네, 아는을지로>도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최근에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손잡고 특색 있는 마을 가게를 소개하는 ‘우리동네’ 섹션에 지역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실험3. 공급에서 운영까지 협동조합 아파트, 더함
어떤 지역을 개발하는 것뿐 아니라, 주거 자체의 공공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공동체 아파트 ‘위스테이’(WE STAY)가 그것이다. 사회적경제법센터 ‘더함’은 경기 남양주시 별내지구, 고양시 지축지구에 협동조합 공동체 아파트를 올해 3월 착공할 예정이다. 기존의 ‘뉴스테이’ 사업은 주거 안정을 위한 기업형 임대주택으로 의무임대기간인 8년간 5% 이상 임대료를 올릴 수 없다. ‘위스테이’는 사회적경제 조직의 특성을 살려 중간 이익을 최소화함으로써 인근 시세 대비 70~80% 수준으로 주거비를 낮추고, 임대료와 보증금 상승률도 연 3% 수준으로 제한했다. 저렴할 뿐 아니라 공동체가 살아 있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공동육아, 공유도서관, 생활협동조합도 운영할 예정이다. 양동수 더함 대표는 “불공정한 국내 주택 공급 구조를 입주자 중심으로 바꾸는 동시에 입주자들의 공동체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색 있는 사업모델도 필요하지만 같은 뜻을 가진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의 협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이런 협력의 기회를 주선하는 자리도 늘고 있다. 에스케이행복나눔재단은 지난해부터 사회적기업가와 투자자, 관계자들 간 네트워킹을 도모하는 ‘사회혁신가 테이블’(SIT, Social Innovators Table)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에스케이행복나눔재단 사옥에서 열린 네 번째 사회혁신가 테이블의 주제는 ‘도시재생’이었다. 어반하이브리드, 어반플레이, 더함을 비롯해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안테나, 공공그라운드 등 도시재생 분야에서 활동중인 60여명의 사회적기업가와 관계자들이 모였다.

이날 행사에 모인 사회적기업가들은 협력이 중요하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여러 어려움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도시재생만 해도 공공기관과 협력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공공기관이 가지고 있는 유휴자산을 공유하는 아이디어는 민간에서 많이 나오고 있지만, 현실화된 사례는 많지 않다. 공공이 소유한 자원을 민간에 위탁해 활용하는 관련 법적 근거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관악구청과 함께 투자하고 추진한 어반하이브리드의 ‘신림아지트’ 사업도 그랬다. 어반하이브리드는 4년간 방치돼 있던 관악구의 경로당을 ‘신림아지트’라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개발했다. 하지만 이 공간은 운영한 지 3년이 채 안 돼 문을 닫아야만 했다. 사업을 시작할 때 담당했던 공무원은 이런 공간의 가치를 이해해 융통성 있게 법을 적용했으나, 2년 후 담당자가 바뀌자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부터 해마다 10조원씩 총 50조원의 재원을 도시뉴딜 사업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국토부가 선정한 전국 68개의 도시재생시범구역과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도시재생 30여곳을 합치면 올해 100여개의 도시재생지구가 생길 예정이다. 단일 사업으로 건국 이래 최대 예산이 배정된 사업으로 평가된다. 이날 사회혁신가 테이블 토론회를 진행한 김종익 서울시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도시재생 사업의 성패는 지역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민간과 공공이 그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지역 거버넌스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화성에서 온 공무원과 금성에서 온 주민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정책을 실행하는 공무원과 실제 정책 대상자인 주민 사이에 인식의 차가 크다”며 “이들의 필요를 연결해주는 코디네이터 그룹으로서 사회적기업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선하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35128.html#csidx3e1b73d7629393d8ea0e389394d4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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