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노동 충격,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전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60)과 대표적인 국내 노동경제 연구자로 손꼽히는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54)이 지난 3일 경향신문에서 벌인 대담
정태인:
과거에는 위기가 발생하면 환율이 상승하면서 수출에 유리해져 위기에서 탈출하는 방식이 가능했지만 코로나19로 선진국 주요 경제가 멈춘 국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대량실업이 발생하면 경제위기가 오히려 사회위기로 발전할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은 방역과 경제 양 측면에서 패닉에 빠지지 않고 통제 가능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부어도 패닉이 발생한 상황 이후에 붓는 것보다는 경제적이다. 지금은 고용유지와 방역, 사회안전망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써야 할 때다.
(목표는 생존: 위기의식이 있어야) 바이러스 대책이든 경제정책이든 지금의 목표는 생존이다. 생존에 필요한 조치를 아주 쉽게 간단한 방법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발표하는 대책들은 아주 세세하고 정교해서 위기상황과 맞지 않다. 정부가 위기의식이 없다. 동시에 비판받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재난지원금만 하더라도 정부는 처음에는 주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하다 여론의 압박이 거세지니 소득하위 70%선에서 끊고, 재산도 고려해서 5월에 준다고 한다. 당장의 소득 감소를 보전하기에 너무 늦다. 먼저 지급하고 정부가 생각하는 기준에 맞춰 상위계층에게는 추후 정산하는 방법도 있다. 지금 정부의 방안대로라면 어떤 기준을 마련하더라도 비판만 받고 시기도 놓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재정 걱정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 국가채무비율을 40%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기준이다. 재정상태가 상당히 건전한데, 다른 나라들은 국내총생산(GDP)의 10% 이상의 예산을 이번 위기 대응에 쓰는 반면 한국 정부는 그렇지 않다. 재정건전성을 지켜왔던 이유는 위기 때 쓰라는 것이고 지금이 바로 그 위기다. 재정건전성에 집착한다는 것이야말로 현 정부에 위기의식이 없다는 방증이다.
(전시경제, 그린뉴딜) 미국과 유럽 언론에서는 현 상태를 전시경제라고 표현하는데, 실제 방역은 전쟁과 상당히 유사하다. 전쟁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최소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끔 한다. 스페인 독감 때문에 스웨덴의 복지국가가 만들어졌고, 2차 세계대전으로 영국 경제가 피폐해졌을 때 영국 복지제도의 근간이 된 ‘베버리지 보고서’가 나왔다. 전쟁 때의 경제원칙은 배급이다. 시장의 장점은 여러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실험을 해서 가장 괜찮은 것을 선택하게 하는 메커니즘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전쟁은 시행착오를 겪으면 안된다. 지금 동아시아 국가들이 방역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도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국가가 대응을 주도하는 모델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기업이나 시장에 경제원칙을 맡기면 우왕좌왕한다. 마스크 배급이 단적인 예였다. 결국 배급 형태로 해결했다. 앞으로 식량 등 생활필수품 문제는 없을지, 세계적인 공급쇼크가 일어날 때 어떻게 생활필수품을 확보할지 정부의 계획이 돼 있어야 한다. 또 코로나19 감염이 지나가더라도 기업들이 세계경제 침체와 공급망 붕괴로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기후나 에너지 등 ‘그린뉴딜’에 투자할 적기다. 공급망이 붕괴된 상황에서 내수 투자로 제조업을 살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전례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이 말은 ‘전례가 없는 비상상황’이라고 했는데, 현재 기획재정부에 맡겨놓으니 모두 전례가 있는 정책만을 만들고 있다.
(임대료 정책: 임대료 동결 및 임대계약 자동 연장) 임대료에 대한 정책이 빠져 있다. 지금 자영업자에게 1000만원가량의 긴급수당을 줘도 임대료로 빠져나갈 수 있다. 임대료는 동결하고 임대계약은 자동 연장해야 한다. 임대료 동결 여력이 없는 영세 임대업자도 분명 있는데 이 경우 금융지원이 필요하다. 임대료 정책은 방역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임대료 낼 여력이 없어서 집에서 쫓겨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스페인 사회부 장관은 “집은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한 필수적인 참호”라고 말했다. 아예 정부 소유 건물에서는 임대료를 안 받는 방법도 있지 않겠나. 정책자금을 받는 조건으로 해고와 더불어 기업의 자사주 매입도 금지할 필요가 있다. 경제위기가 벌어지면 정부 지원을 받은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를 띄우는 일이 항상 벌어지곤 했다. 지금 지켜야 할 것은 주가가 아니라 생계와 일자리다.
(의료자원에 대한 추가 지원) 긴급대책에 공공의료 정책이 부족하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지금까지 코로나19의 경제위기 측면을 주로 얘기했는데 바이러스 위기의 불씨 역시 살아있다. 바이러스 위기의 핵심은 의료체계 붕괴다. 유럽도 긴축재정을 오래하다보니 에크모(체외막산소공급장치) 등 첨단의료기기가 부족해서 의료자원이 한계에 봉착하다보니 지금의 위기가 벌어졌다. 한국도 대구와 경북의 확진자 수가 급증했을 때 아슬아슬했다. 바이러스 출현은 이번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내년이나 내후년에도 얼마든지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의료자원에 대한 추가 지원을 아껴서는 안된다.
이병희:
(취약계층의 광범위한 소득 감소) 지난 2월 물리적 거리 두기가 본격화하면서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소득 감소가 진행되고 있다. 일용직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 등의 실업은 지표로 포착되기 쉽지 않다. 나아가 세계경제 위기로 제조업에도 고용위기가 번질 상황인데 정부가 기업이 고용을 유지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일에도 매우 소극적이다. 고용안정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을 하고 비공식 노동자나 자영업자 등 우리가 그동안 보호하지 못했던 계층을 어떻게 책임질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실업자에 대한 직접 지원 확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국내 실업자 수는 100만명을 넘지 않았다. 96만명에서 정점을 찍고 감소했다. 실업지표에 안 잡히는 숨겨진 노동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고용형태가 더 다양해졌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숨겨진 노동자들이 200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는 정부가 2조5000억원을 들여서 희망근로 일자리를 만들었다. 지금은 감염 위기 때문에 그게 불가능하다. 지금 다른 나라들도 유별나게 재정을 확대하며 실업대책을 쏟아내는 이유는 단기적 고용쇼크를 줄여야만 하고, 실업자에 대한 직접 지원을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고용 유지를 위한 강력한 원칙 필요) 긴급재난지원금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6월에 회복이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경제위기는 아무리 빨리 회복되더라도 올해 4분기까지 진행될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실업과 소득 감소를 보전하기 매우 부족하다. 일자리 유지에 대한 보다 강력한 원칙들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을 보더라도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빠른 경제회복의 지름길이었다. 당시 독일은 일자리 나누기로 빠르게 위기를 빠져나온 반면, 프랑스나 영국 등 실업률 10% 이상을 기록하는 등 대량실업을 겪었던 나라들은 그렇지 못했다. 한 번 고용안전망 바깥으로 밀려나면 재취업도 어렵고 전반적인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이 나라들이 고용유지를 지원하는 정책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은 금융위기 때의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프랑스의 고용유지정책을 세세하게 보면 ‘파견노동자 등에게 확대 적용하라’는 내용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아일랜드와 캐나다는 자영업자도 포함한 실업부조 제도를 운영한다. 우리의 경우는 지금 인천공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해고되지 않도록 고용유지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 두번째로 실업지원을 하더라도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염두에 둬야 한다. 고용보험의 포괄 범위가 공무원과 교원을 포함해도 56%이고 전체 노동자의 44%가 사각지대에 있다. 재난이 왔을 때 대응하기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 지방자치단체들이 재난지원금 마련을 비롯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실업자들에게는 충분하지 않다. 중앙정부는 미국, 캐나다, 아일랜드처럼 긴급 실업수당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용유지 기업 지원 확대) 고용유지를 위해 기업에 하는 지원도 충분하지 않다. 고용유지지원금이 유일한데, 1일 인건비 지원 한도조차 6만6000원(대기업 기준)에 불과하다. 유동성 제약이 있는 기업의 입장에서 노동비용은 인건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보험료, 임대료, 대출이자 등 모든 고정비용의 압력을 고려해 해고를 택한다. 인건비뿐만 아니라 부수적 비용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이번 코로나19 대책을 보면 독일은 임금뿐 아니라 사회보험료도 100% 지원한다. 미국의 2조달러 경기부양 패키지를 보면 중소기업에 인건비, 임대료, 모기지 등 특정 용도의 고정적 대출을 해주고 올해 6월 말까지 고용을 유지하면 부채를 탕감하겠다는 정책도 들어가 있다. 고용유지를 전제로 기업에 지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실업급여 신청건수가 2주 만에 1000만명에 달하게 급증하는 것은 이 조치가 늦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도 기업의 고용유지에 대한 인센티브를 더 강하게 줄 필요가 있다.
(고용안정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 필요) 우선 고용안정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또 다양한 사람들을 안전망에서 누락시키는 우리의 복지국가 한계를 직시하면서 비공식 노동자나 자영업자 등 우리가 그동안 보호하지 못했던 계층에 대해 어떻게 책임질지 같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일자리가 방파제/ 코로나19 노동 충격 해법, 이병희·정태인 대담/ 경향비즈, 박은하 기자
2020-04-06
▶정태인 독립연구자 = 1960년생.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진보성향 경제학자.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냈고, 민간 연구기관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원장과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 = 1966년생.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1997년부터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불평등과 사회안전망 설계 등을 연구하고 있다. <2000년대 소득불평등의 증가요인 분석>(2014)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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