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에 부쳐-21대 국회와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
코로나19 사태가 진행중인 가운데 치러진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이라는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했다. 개헌을 빼고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의석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동안 미진했던 개혁을 실현하리라는 기대들도 있다. 더 이상 미래통합당이 발목을 잡지 못할 것이고 정부와 민주당도 이제는 미래통합당 핑계를 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앞으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그렇게 할지는 미지수다. 총선 후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낙연 총괄선대위원장 등은 개혁에 대한 기대수준을 낮추고 ‘속도 조절’할 것임을 내비쳤다.
우리는 오히려 초유의 코로나19 감염병 팬데믹 사태와 경제침체 상황을 맞아 서둘러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믿는다. 수년 전 촛불을 들었던 1천7백만 시민들의 염원도 그러할 것이다.
코로나19와 경제 침체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그대로 반영한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가혹하다. 코로나19 사태로 감염되거나 사망한 사람들도 콜센터나 요양병원, 정신병원 등에 집중돼 있는 노동자들이나 약자들이었다. 코로나19와 경제침체로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돼 실업자가 폭증하고 있고, 임금삭감 등으로 고통에 내몰리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코로나19 사태는 한동안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여전히 제2의 폭발 등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초유의 경제침체도 장기화할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한 달여 임기가 남은 20대 국회, 그리고 새로 출범하는 21대 국회와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감염병 사태에 대한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밝히 드러난 우리 나라의 의료 현실을 개혁해야 한다.
첫째,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난 공공의료와 인력의 부족 사태를 속히 해결해야 한다.
2015년 메르스 사태와 마찬가지로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공공병원들과 공공의료 인력들의 역할이 핵심적이었다. 대구에서의 병상 부족과 인력 부족은 다시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대구의 상황이 전국화되었다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신자유주의적으로 공공의료를 공격해 온 미국과 유럽과 같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 것임은 자명하다. 따라서 속히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 최소 30%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 음압병상도 대폭 확충해야 한다. 이것도 민간에 맡겨서는 안 되고 공공에서 책임져야 한다.
둘째, 공공 감염병전문병원을 권역별로 속히 설립해야 한다.
민주당은 총선 공약으로 감염병전문병원 설립을 약속했지만 이 것을 공공에서 책임질지 민간에 맡길 것인지 분명히 하지 않았다. 감염병전문병원을 민간에 맡겨둔다면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와 같은 사태를 막지 못할 것이다. 민간 병원들은 이윤을 우선하기 때문에 이윤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감염병전문병원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착한 적자’를 감수하고 공공에서 책임지고 설립, 운영해야 한다. 이 ‘착한 적자’는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손실과 비교해 보면 감당해야 할 적자임이 분명하다.
셋째, 공공의료인력과 의료인력 전반을 확충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부족한 공공병원 의료진을 공중보건의로 채울 수는 없다. 감염병사태 때마다 자원봉사에 의존해서도 안된다. 부족한 공공의료인력을 ‘갈아넣어서’ 대처하는 방식은 의료진의 감염 위험을 높여 감염병 사태를 오히려 폭증시킬 수 있다. 20대 국회에 제출된 공공의과대학 법안을 공공의과대학의 수와 정원을 확대해 5월 국회에서 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전국 국공립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 지역 출신의 국가장학생을 뽑아 졸업 후 일정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공공병원에 근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순히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것으로는 미용 성형 등 돈되는 과목의 의사가 늘어나고 감염내과, 응급외과 등의 필수과목 의사들이 줄어드는 추세를 막지 못한다. 의협의 집단이기주의적 반대를 제압하고 추진해야 한다.
또한 충분한 간호인력 확보를 위해 법률로 의료기관에 환자 당 간호인력 적정기준을 강제해 감염병 대처에 숙련된 간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간호인력이 충분히 배치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도 확대해야 한다. 최소한 문재인 정부가 애초 약속했던 2020년까지 10만 병상 확충만이라도 지금부터 시행해야 한다.
최일선에서 감염병에 맞서 싸우는 의료인력을 위한 감염병 보호장비도 중앙정부에서 책임지고 생산 및 배분하도록 해야 한다. 감염병에 직접 맞서는 의료인력은 누구보다 먼저 감염병으로부터 보호돼야 한다.
넷째, 즉각 상병수당을 도입해야 한다.
우리 나라는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상병수당이 없다. 그래서 아파도, 감염병에 걸려도 입원하거나 격리되기 위해서는 그 기간 동안의 소득을 포기해야 한다. 유급 병가(휴가)가 없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특수고용 노동자들, 영세 자영업자들에게는 소득과 감염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당한다. 이는 감염병 확산 방지도 어렵게 한다. 지금 당장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해 대통령이 결정하면 상병수당을 실시할 수 있다. 건강보험 재정의 국가책임을 강화해 국고부담을 정상화하면 된다. 또한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급여를 확대해야 한다.
다섯째, 전국민주치의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감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도 그 지역 주민들의 건강 상태와 병력을 잘 알고 있는 주치의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국민주치의제도는 대형병원 환자 쏠림을 막을 수 있고, 예방, 진료, 재활 등 질높은 일차의료를 제공할 수 있다.
여섯째, 건강보험을 강화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우리 건강보험이 찬사를 받는 일이 벌어졌지만, 3천만 이상의 국민들이 비싼 보험료를 추가로 내고 민간보험에 가입할 정도로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낮다. 정부가 법에 규정된 국가지원조차 지키지 않아 보장률이 60% 초반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법에 규정된 20% 국고지원을 지키고 그동안 미납한 25조 원에 달하는 국고지원금을 납부해야 한다. 국고지원의 시한을 정한 규정을 폐지해 국가가 건강보험의 재정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우리와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들(네덜란드 55.0%, 프랑스 52.2%, 일본 38.8%, 벨기에 33.7%, 대만 22.9%)만큼 국고지원을 높여야 한다.
일곱째, 의료 민영화, 영리화 조처를 철회하고 중단해야 한다.
20대 국회는 가장 많은 의료 영리와 법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과 통합당이 함께 합의해서 통과시킨 것이다. 규제샌드박스, 규제자유특구법, 개인정보보호법 개악, 첨단재생의료법, 혁신의료기기법,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 등 의료 기업들의 이윤을 위한 법안과 정책들이 대거 통과됐다. 국민 안전과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이러한 법안들은 21대 국회에서 철회되어야 한다. 영리병원을 허용하기 위해 추진되던 보건의료기술진흥법 개악도 중단해야 한다. 민주당은 의료민영화, 영리화에 반대한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여덟째, 공공제약사를 설립해 백신과 치료제 개발, 생산, 공급을 책임져야 한다.
민간제약사들의 이윤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국가가 적시에 안정적으로 치료제와 백신을 생산·공급할 준비를 상시적으로 갖춰야 한다. 또 전 세계적으로 의약품 공급망이 불안정해짐에 따라 수입에 의존하던 필수의약품 국내 수급에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공중보건 위기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의약품 생산·공급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들은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를 성공적으로 종식시키고 차후 재발할 감염병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들이다. 메르스 사태의 교훈을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않아 대구에서처럼 병상과 의료인력 부족으로 발을 동동구르는 일은 더는 있어서는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180석을 가지고도 기대에 미치는 개혁을 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지지층을 잃고 위기에 빠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2004년 열린우리당이 152석의 과반을 차지하고도 변변한 개혁을 하지 못하고 배신해 이명박근혜의 집권으로 이어졌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2020년 4월 20일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가난한이들의 건강권확보를 위한 연대회의,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기독청년의료인회, 대전시립병원 설립운동본부,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여성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민노련, 전철연), 전국빈민연합(전노련, 빈철련), 노점노동연대, 참여연대, 서울YMCA 시민중계실,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연대,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일산병원노동조합,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 성남무상의료운동본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노동조합, 전국정보경제서비스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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