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 / 슬라보예 지젝
-(위기)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은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을 대면케 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 일상에서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가 돌아가기를 멈춘 것이다. 전체 국가가 록다운 체제로 들어가 많은 이들이 집 안에 발이 묶여 있다(이러한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대다수 사람들은 생존할 테지만, 경제적으로 어마어마한 위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 내가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야만주의로의 회귀, 집단 공황과 무질서로 잔인무도한 생존 폭력이 횡행하는 것이 아니다(다만 의료 보건 등 공공영역의 붕괴의 가능성 때문에 이것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하겠다). 대놓고 야만으로 퇴행하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이다.
-(물리적 거리두기) 따라서 나는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조르조 아감벤의 의견에 반대한다.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도 바이러스 숙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경제 체제의 전환) 개인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불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경제 체계와 사회 체계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관한 중요한 질문들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할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와의 투쟁은 이데올로기적 농간에 맞선 투쟁과 함께 해야 하며 생태학적 투쟁 일반의 일부로서 그렇게 해야 한다. 케이트 존스가 지적하듯이 야생에서 인류로의 질병 전이는 “경제 발전의 숨어 있던 대가다. 우리와 같은 존재는 모든 환경에 어디에나 있다. 우리는 바이러스가 더 쉽게 전염되는 서식지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계속 나타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삼중 위기: 의학, 경제, 정신건강) 우리는 삼중의 위기에 빠져 있다: 의학적(전염병으로 인한), 경제적(전염병이 어떻게 종결되든 위기는 심각할 것이다), 그리고(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는) 정신건강 관련한 위기이다.
-(전쟁 공산주의) 내가 몇 주 전에 “공산주의”를 거론했을 때 나는 조롱받았지만 이제는 “트럼프가 민간 자본을 통제하겠다고 선언했다.” 불과 일주일 전이라도 이런 헤드라인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리고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비슷한 조치들이 많이 뒤따를 것이고 국가운영 보건 체계에 과부하가 생기면 자주적 지역 공동체의 필요성도 제기될 것이다.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생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를 가능케 하려면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가 기능해야 한다: 전기, 음식, 의약품 공급 등(우리는 곧 회복한 자들과 어느 정도 면역력이 있는 자들을 긴급 공공 노동에 동원시키기 위해 이들의 리스트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유토피아 공산주의의 비전이 아니라, 단순 생존의 필요로 인해 도입된 공산주의이다. 안타깝게도 이 공산주의의 유형은 1918년 소련에서 “전쟁 공산주의”라 불렸던 유형이다.
-(강제된 사회주의? 재난 자본주의? 그리고 새로운 세계 질서) 흔히 말하듯,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는 모두 사회주의자다. 트럼프도 모든 성인 시민들에게 1,000달러를 분배하는 기본소득의 한 형태를 고려하고 있다. 수조 달러가 시장 원칙들을 위반하며 쓰여질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어디서, 누구를 위해서? 이 강제된 사회주의는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가 될 것인가(2008년 수백만의 보통사람들이 재산을 잃는 동안 은행들이 구제되었던 것을 기억하는가)? 이번 전염병도 나오미 클라인이 “재난 자본주의”라 일컬은 길고 슬픈 이야기의 한 챕터에 불과한 것으로 그칠 것인가? 아니면 그로부터 새로운(시시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균형은 더 갖춘) 세계 질서가 탄생할 것인가?
*우리의 자연 파괴는 Covid-19의 책임입니까?/ 케이트 존스, 가디언, 20200318
*코로나바이러스 자본주의/ 나오미 클라인 Coronavirus Capitalism/ Naomi Klein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 / 슬라보예 지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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