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프랑스 기자의 한국 자가격리 체험기/ 김재환
외신과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국내외 외신기자들을 많이 접하는 편이다. 국내에는 300여명의 상주 외신들이 있고, 해마다 100여명의 외신 기자들을 초청해 그들의 한국 취재를 지원하는 것도 내 업무 중의 하나이다. 최근 코로나 19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외신에는 한국에 대한 찬사와 긍정적 평가가 넘쳐 난다. 기사가 쏟아지니 외신과에 대한 주문도 폭주한다.
오늘 프랑스의 유력 주간지인 <le point>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이 주간지는 불어권 내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잡지로, 지난 3월 19일과 20일, 우리의 방역 대응에 대해 취재를 하고자 두명의 특파원을 파견했다. 펜기자인 Andre Jeremy는 주재하던 홍콩에서 한국으로 왔고, 사진기자인 Charlene는 파리에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외신들이 한국에 오면 언제나 문체부 외신과가 일종의 취재 지원 창구가 된다. 우리과의 담당 직원이 이들의 취재를 지원했음은 물론이다.
이 두 기자는 한명의 코디네이터와 함께 선별진료소를 방문하고, 서울대 아주대 등의 감염병 전문가를 인터뷰하고, 자가격리자를 위한 앱을 시연해보고, 방역작업의 현장을 취재했다. 그러다, 귀국을 앞둔 지난 3월 27일 사진기자인 샤를렌느가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당연한 수순으로 사진기자는 병원에 입원했고, 앙드레 제레미 기자는 호텔에서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이들이 우리 사무실을 방문했기 때문에 부랴부랴 방역을 하고, 접촉했던 직원은 코로나 진단을 받고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다행히 다음날 음성이 나왔다.) 이들이 인터뷰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확진자가 된 기자는 해외 입국자의 2주 격리방침이 발표되기 이전에 무증상으로 입국한 것 같다.
그런데 이 기자가 오늘 해당 잡지에 한국에서 자가격리를 했던 자신의 체험을 기사로 써서 올렸다.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확진자의 동선 파악과 자가격리 체계, 방역에 대한 관리를 두고 서구의 식자층 일부는 '히스테릭한 파시스트 보건국가'라고 보는데, 그런 시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자신의 체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미증유의 펜데믹 사태에 대해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가격리 시스템을 두고 '파시스트 보건국가'라고 비판하는 것은 서구의 관념론자들의 어설픈 지적일 뿐이다. 이 기자는 민주주의적 가치와 문화를 유지하면서도 방역에 성공하는 우리의 모습을 비교적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쓰고 있다. "이 모든 조치들이 그 어떤 전체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인권이나 사생활 또는 자유로운 이동권을 침해하지도 않는다. 이 비극적인 현재의 상황에서 단지 시민정신의 실현일 뿐이다."
내가 문화원장으로 부임할 예정인 벨기에는 벌써 확진자가120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어제 4월 1일자로 828명이나 된다.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사는 선진국이라 여겼던 국가들이 이제 코로나 확진자/사망자수에서 세계 10위권에 도열해 있다. 심지어 스위스같은 나라가 코로나 감염자수/사망자수 세계 9위로 우리를 훨씬 앞질렀다. 인구 대비로 따지면, 우리보다 적게는 9배에서 15배에 이른다. 질병을 통제해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것 역시 선진국의 주요한 요건일 것이다. 요즘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이들을 모델로 삼아왔던 그간의 인식이 어쩌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민주주의와 국가의 역량은 생각보다 취약하기 그지없었던 것. 다음은 앙드레 제레미 기자의 기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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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re d'un Français en quarantaine en Corée du Sud
□ 한국에서 자가 격리 중인 한 프랑스인의 편지 (Lettre d'un Français en quarantaine en Corée du Sud/프랑스 Le Point 04.01 인터넷판 Jérémy André, 서울)
한국에서 취재 중이던 본지 기자가 서울에서 자가 격리 중이다. 그의 편지는 상식이 통하는 시스템을 위한 변론이다.
내가 탄 앰블런스가 러시아워 시간인데도 사이렌을 울리며 이리저리 다른 차량들을 추월하며 서울의 대로를 달렸다. 뉴욕의 타임스퀘어 광장과 파리의 콩코드 광장 등 다른 국가들의 대도시들에 적막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서울의 교통 혼잡은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앰블런스가 한 호텔 앞에 도착하였다. 짐을 들고 들어서자 리셉션 직원이 묻는다. "저희 호텔 요금을 아십니까?". 하루 밤에 대략 50유로(7만원) 정도다. 물론 내가 지불해야 한다. 마지막 담배를 태운 뒤, 호텔 직원이 내 방까지 안내하고는 나에게 열쇠를 넘겨주고 문을 닫는다. 마치 비록 의무적 격리이지만 나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다는 것 같다.
앞으로 14일간의 격리를 시작하는 나에게는 마지막으로 사람과 접촉하는 것이다. 3월 27일 한국 르포 취재에 동행한 사진기자 샤를렌느(Charlène)가 Covid-19 검사에서 양성으로 판명되었다. 그녀는 곧바로 병원에 입원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상태는 양호하다. 나는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감염자와 밀접한 접촉을 하였기 때문에 내가 바이러스를 보균한 채로 있다가 며칠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시킬 위험을 막기 위해 한국질병관리본부에 의해 격리 조치를 받았다.
“히스테릭한 파시스트 보건국가”의 탄생일까?
나는 언젠가는 바이러스에 전염될 줄 알고 있었다. 모든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잠정적 감염 위험이 있는 사람들과 외국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조처를 취하는 것이 규칙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칼럼 "Lettre d'Asie (아시아의 편지)"의 마지막 편에서 나는 싱가포르에서 격리생활을 하고 있는 한 프랑스 동포의 이야기를 전했었다. 그리고 내가 격리를 시작한 날 한국의 행정안전부로부터 내가 문의한 한국의 격리시스템에 대한 답변이 도착하였다.
행정안전부의 관련부서는 나에게 “3월 26일 현재, 외국인을 포함해 총 10,166명이 자가 격리 상태에 있으며, 이들 중 대략 6,527명(64,2%)이 자가격리용 앱을 이용하고 있다”고 답변하였다. 잊은 것일까? 아니면 나를 신뢰한다는 뜻인가? 나는 이 앱을 설치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한국의 격리시스템, 특히 디지털 감시시스템은 서방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독일의 주요 일간지 Die Welt가 이 문제를 헌법학자 Hans-Jürgen Paper에 게 질의했는데, 그는 이러한 시스템을 팬더믹을 핑계로 “히스테릭한 파시스트 보건국가”가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중국의 입국자에 대한 엄격한 격리 조치, 대만의 격리조치를 위반하고 나이트클럽에 가는 사람들에 대한 엄청난 벌금 부과, 홍콩의 전자 팔찌 이용 그리고 한국이 이용하고 있는 유명한 감시 앱 등에 대해 서방 언론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정확히 무엇일까? 2월 중순 경에 한국 정부는 “감염 위험이 높은 사람들을 테스트하고 이들과의 접촉자들을 찾아내어 격리”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 전략을 수립하였다. 이는 격리될 사람의 숫자가 폭증하는 것을 예상해 둔 전략이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따라서 임의적인 감금과는 다른 방식을 찾아야 했다. 이런 이유로 내국인들은 자택에서, 외국인들은 호텔에서 자가 격리하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냥 집에만 있으라는 애매한 권고만 한다면 한국인들도 프랑스인들만큼 규칙을 지키지는 않을 것이다.
꼭 처벌하지 않으면서 감시하기
그래서 한 앱 개발업체가 긴급히 24일 만에 코로나 “자가격리 안전보호” 앱을 3월 7일에 내놓았다. 이 앱은 격리당한 사람들이 담당 지방공무원과 자신들의 위치를 공유하는 것이다. 개발업체는 “격리자는 하루에 두 번에 걸쳐 자가 검진 결과를 입력해야 한다. 격리 장소를 이탈할 경우엔 전담 공무원에게 푸시 알림이 전달된다고 설명한다. 만약 격리자가 허가받지 않고 격리지역을 이탈할 경우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대다수의 경우 주의만 받을 뿐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예를 들어, 3월 19일에 한 격리자가 격리장소를 이탈하여 시장에 갔다. 자가격리 앱으로 경고를 받은 담당공무원은 즉시 해당 격리자에게 전화하여 격리장소로 복귀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담당공무원은 격리자의 거주지를 방문하여 자가격리의 중요성을 주지시킨다”.
이것이 오웰(Orwell)의 소설 속에 나오는 “빅브라더가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와 같단 말인가? 물론 격리자는 다행히도 감시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 감시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망자가 165명에 불과하다. 대대적인 검사와 감염자의 격리 정책 덕분에 바이러스 확산세가 중단되었다. 다른 여러 국가들(부유국들인데도 불구하고)에서는 하루에 수백 명씩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일부를 격리하는 대신에 모든 사람들을 감금시키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인가?
그리고 격리조치와 감시가 인권국가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망상을 이제는 중지해야 한다. 공공 보건을 위해 격리된 개인을 감시하는 것은 파시즘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우리는 감염 위험이 높은 일부 극히 소수의 사람들을 격리시키는 데 주저하였다. 그 결과, 우리 민주주의 국가들은 결국 “대대적인 격리”를 하고 마치 전쟁 중인 국가들처럼 길거리에 검문소를 설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도 일부를 격리하는 대신에 모든 사람들을 감금시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할 것인가? 당신들은 아시아에서 실시하는 것처럼 스스로 자가 격리를 하는 대신 벌금을 무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말인가?
1년 징역형과 1천만 원의 벌금형
이것이 내가 겪고 있는 격리상황이다. 나는 실내만을 빙빙 돌고 있다. 동료인 샤를렌느 기자의 안부도 걱정이다. 간혹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안녕하세요, 리셉션입니다. 오늘 점심식사 하시겠습니까?” 이어 호텔방의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식판이 방문 앞에 놓여져 있다. 나는 한국음식을 엄청 좋아한다. 그렇지만 매번 미지근하고 똑같은 도시락을 다 끝내기가 쉽지 않다. 복도에서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문구멍으로 밖을 내다본다.
관타나모의 포로수용소나 영화 미드나 이트 익스프레스(Midnight Express)의 감옥과는 완전히 다르다. 자가 격리를 한지 4일째 되는 날,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서울 근교인 수원에 거주하는 한 영국인이 격리 규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 영국인은 태국을 방문했을 때 증상을 보였는데, 3월 20일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당국이 요청한 것처럼 자가 격리를 하지 않았다. 3월 23일 Covid-19 확진 판정을 받기까지 그는 20여 명과 접촉하였으며 골프를 치기 위해 다섯 군데의 도시를 방문하기까지 하였다. 한 번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로...
인간의 본성에 대해 환상을 갖지 않는 한국은 얼마 전에 자가 격리를 위반하는 사람을 1년의 징역형과 1천만 원의 벌금형에 처하는 새로운 법을 통과시켰다. 외국인의 경우에는 강제 추방될 수 있다. 이 모든 조처들이 그 어떤 전체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인권이나 사생활 또는 자유로운 이동권을 침해하지도 않는다. 격리 조치를 따르고 전반적인 이동금지를 준수하는 것은 이 비극적인 현재의 상황에서 단지 시민정신의 실현일 뿐이다. 반면에, 이러한 조치를 준수해야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실부정 속에 빠져서 현재가 팬더믹 상황이고 그로 인해 피해가 끔찍한 속도로 커지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LETTRE D'ASIE. À la suite d'une enquête en Corée du Sud, notre correspondant a été placé en quarantaine à Séoul. Plaidoyer pour un système de bon s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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