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30일 월요일

코로나19가 가져올 미래 사회의 변화 시나리오 셋(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월간중앙, 2020.03.27)

코로나19가 가져올 미래 사회의 변화 시나리오 셋
전염병이 바꾼 인류의 역사/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월간중앙, 2020.03.27)
 
-페스트에 관한 유럽인들의 기억은 독일의 전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엿볼 수 있다. 집시의 전설에서도 이 사나이를 만날 수 있는데, 마을에 창궐한 페스트를 퇴치하기 위해 쥐를 없앤 사나이가 마을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자 영주가 그 사나이를 죽였다는 내용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에 다양한 형태의 전설로 전해진다. 페스트는 잊을 만하면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유럽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알베르 카뮈는 1947년 소설 [페스트]를 통해 감염의 공포와 이를 극복하는 실존적 인간을 다뤘다. 이렇듯 페스트는 유럽인들의 삶과 문화 깊숙이 영향을 끼쳐왔다.
 
(페스트/ 흑사병) 상부구조(문화)보다 더 큰 영향을 준 곳은 하부구조(경제). 페스트는 봉건제를 무너뜨린 불씨가 됐다. 페스트로 인한 인구 급감이 노쇠한 봉건제를 빠르게 붕괴시켰다. 노동력 감소가 임금 인상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2~3배의 임금 인상으로도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임금을 10배 이상 올렸다는 기록도 발견된다. 소작농을 구하지 못한 영세 영주들이 파산하기 시작하자, 중세는 급격히 재편된다. 영주와 농민 간의 무력 충돌을 거치면서, 경제구조는 변화한다. 시장과 화폐 경제, 교역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화폐 경제는 부르주아라는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냈고, 농민들은 봉건제의 굴레를 벗고 자유민 지위와 보유지에 대한 자유 처분권까지 얻게 된다. 근대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천연두) 천연두 역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경제사적으로는 금융 질서의 변화를 촉발한 사례다. 찬란했던 잉카제국이 스페인의 침략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에선 유럽 선진 문명의 힘으로 평가하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총과 말을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고작 168명인 군대에 8만 명 병력이 일거에 패배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상당히 신빙성 있는 또 다른 학설에 따르면, 이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것은 천연두였다. 1526년 천연두는 유럽에서 여러 차례 유행해, 스페인 군대는 내성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잉카인은 그렇지 않았다. 유럽의 침략자들이 가져온 천연두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내성이 없는 잉카인을 쓰러뜨렸다. 심지어 잉카 제국의 황제 우아이나 카팍과 후계자 니난 쿠유치가 모두 천연두로 사망하면서 제국의 혼란은 극에 달한다. 보이지 않는 죽음을 몰고 온 벽안(碧眼)의 사자(使者)들은 잉카인에게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천연두는 급기야 유럽의 금융 질서를 바꾸기에 이른다. 1500~1800년 남아메리카의 은 생산량은 13~15t으로 추정된다. 이는 세계 은 생산량의 85%를 차지하는 규모였다. 금 역시 세계 생산량의 71%가 남아메리카에서 생산됐다. 유럽의 화폐는 금과 은이었다. 금과 은의 증가는 곧 화폐의 증가를 의미한다. 화폐의 증가는 인플레이션을 가져온다. 돈이 늘자 구매력이 늘어났고, 그 결과 공산품 가격이 식비나 인건비보다 빠르게 상승하면서 상공업이 폭발적으로 발전한다.

좀 더 종합해보면, 페스트로 인해 봉건제가 약화하고 자영농이 힘을 가지게 되었다. 소상공인의 농촌 이전은 전체적인 국가를 팽창시키고 대항해 시대의 실마리가 된다. 이후 천연두가 잉카 등 남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의 종말을 촉발했다. 남미에서 유럽으로 금과 은이 쏟아져 들어오자 상공업 종사자의 지위가 강화되고 자본주의가 싹튼다. 경제적 풍요는 정신의 고양을 가져와, 계몽사상이 움트고 시민정신의 토대가 된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비롯한 시민혁명이 유럽 각지에서 들불처럼 일어나면서 역사는 중세와 결별해 근대의 문에 들어선다.
 
(스페인독감)1918년에 시작해 1920년까지 창궐한 스페인독감은 현대사에 기록된 최악의 팬데믹이었다. 불과 2년 만에 세계적으로 약 5억 명이 감염되었고, 세계 인구의 3~5%가 사망했다. 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가 대략 2050~2200만 명 정도인데, 스페인독감 사망자는 무려 5000~1억 명에 달했다. 인구비례 기준으로는 14세기 중세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가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절대적인 사망자 수 기준으로는 스페인독감이 전무후무하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스페인독감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일제강점기 경무총감부 기관지인 [경무휘보]에 따르면 1918년 스페인독감으로 756만 명이 감염되고 약 14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인구 약 1600만 명의 절반이 스페인독감에 걸렸던 것이다. 가을에 추수할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 기사가 남아 있다. 19191월 조선총독부의 독감 방역이 실패하면서 일제의 무단정치에 쌓였던 분노가 표출되어 19193·1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연구도 있다.
 
스페인독감의 기원이 미국이라는 점은 자못 흥미롭다. 경제사적으로 보면, 1919년 스페인독감 팬데믹이 세계를 강타한 후 영국은 몰락하고, 미국이 신흥 경제 대국으로 떠오르는 세계 경제 재편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세계의 패권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간다. 패권은 군사력에 앞서 경제력이 결정짓는다. 영국은 전쟁비용을 미국에서 조달했고,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 이전만 해도 채무국이었던 미국이 전쟁을 치른 뒤에는 세계 최대의 채권국으로 변해 있었다. 패권을 잃어가던 영국과 프랑스는 당장 막대한 채무를 해결하려고, 패전국 독일에 과한 배상금을 요구했다. 19196월 체결된 베르사유조약은 지나치게 독일에 가혹했고(192310월 독일의 국내 물가는 1년 전보다 75억 배나 올랐다), 그 결과 히틀러의 파시즘을 불러왔다.
 
(코로나19가 가져올 미래 사회의 변화 시나리오 셋)

첫째, 개인 간의 거리 두기가 가져올 변화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쇼핑은 이제 생존을 위한 선택이 되고 있다. 각국은 이를 위한 통신과 IT 인프라를 위한 재정 투자를 가속할 것이다. 재정은 도로와 철도가 아닌 IT에 쏠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투자 기회가 있다.

둘째, 국가 간의 거리 벌리기가 가져올 변화다. 애덤 스미스는 모든 사람은 교환함으로써 삶을 영위한다고 했다. 리카도는 국제무역은 비교우위를 통해 교역하는 모든 이에게 득이 됨을 논증했다. 아쉽게도 팬데믹의 공포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블록화와 보호무역주의에 힘을 보태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합의로 나아가던 미·중 무역협상에 또 다른 변수가 생긴 것이다. 한국경제는 국가 간의 거리를 좁히고, 교역이 늘어날 때 좋아진다. 중간재를 생산하는 국가여서다. 제조업 중심의 한국경제가 빨리 재편되지 않는다면, 이미 차가워진 외국인 투자자의 시선을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리더십의 불안정이다. 필자가 내심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다. 각국의 리더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될 수도 있고, 더 큰 문제로 코로나19로 인한 민심 동요가 국가의 지도력을 훼손시키는 시나리오다. 한마디로 미국과 중국, 바로 트럼프와 시진핑의 리더십이 위협받는 시나리오다. 아직 그러한 징후는 없지만, 백신 개발이 늦어지고 가을이면 다시 찾아올 바이러스의 변형이 미국 대선의 변수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리더십이 약화하면 경제정책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한마디로 코로나19가 트럼프 재선의 걸림돌이 되어 글로벌 금융시장이 더 큰 충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코로나19 사태는 문명 발전의 기회일 수도)

윌리엄 맥닐의 명저, [전염병의 세계사]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린다. 인류가 출현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전염병은 앞으로도 인류의 운명과 함께할 것이며,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인간의 역사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매개변수이자 결정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맞다. 바이러스는 인류가 인지하기 전부터 존재해왔고, 인류의 역사발전과 함께해왔다. 바로 이 순간, 역사의 변곡점이 다시금 우리 앞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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